[TV리포트=김풀잎 기자] “음원 사재기 vs 페이스북 마케팅”
그룹 블락비 박경이 쏘아올린 공의 여파가 상당하다. 10여 년 전부터 가요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던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대로 건드렸다. 래퍼 딘딘, 가수 성시경, 인디밴드 멤버 김간지(김준영) 등 일부 가수들도 가세하며 판은 커졌다.
‘음원 사재기’는 요즘 최대 이슈가 된 만큼, 이를 둘러싼 추측도 상당하다. 그중에서도 ‘페이스북 마케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하는데, 지난 2018년 4월 무명가수 닐로가 역주행으로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 이용자에게 닐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한 바이럴 마케팅을 펼쳤을 뿐”이라는 구체적인 주장을 내놓은 뒤, 더욱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와 더욱 가깝게 닿아 있는, 가요 관계자들의 말을 직접 들어봐야 했다. 대다수 관계자들은 “사재기와 SNS(페이스북 등) 마케팅은 확실히 다르다”고 못 박았으나 “10년쯤 전부터 수면 아래에서 움직여오던 사재기 시장도 세대를 거쳐 변화하며, 그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고 풀이했다.
# 음원 사재기 vs 페이스북 마케팅 개념 정리
사재기는 잘 알려져 있듯, 수백 개의 공기계 단말기 등을 이용해 스트리밍을 돌려 음원 차트 순위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불법이다. 페이스북 마케팅은, 페이스북 내 활성화된 인기 페이지에 콘텐츠를 올려 자연스럽게 리스너들의 유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스텔스 마케팅'(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에 가깝다.
한 가요 관계자는 “사재기의 경우, 잘못된 방식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니냐. 페이스북 마케팅과는 결이 다르다. 페이스북 마케팅은, 불특정 다수에게 음원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음원을)계속 들을 지 선택의 권리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사재기 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지지가 않은 상황 아니냐. 그래서 스텔스 마케팅까지 또 다른 오해를 받고 있는 듯하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 경계 모호해진 이유, 단계별 정리
과거 대형기획사가 나섰다가 흐지부지된 이후로, 음원 사재기는 누구도 먼저 입에 올리기 힘든 현안이 됐다. 그사이 사재기 시장 역시 확장됐고, 더 교묘해졌다는 게 가요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 이들의 설명을 빌려, 음원 사재기와 페이스북 마케팅의 경계가 모호하게 보이는 이유를 3단계로 나눠봤다.
1단계 : 사재기가 막 개념화 된 초반에는, 페이스북 마케팅과는 연관이 없는 듯 보였다. 당시 페이스북 등 SNS는 단순 마케팅을 위한 플랫폼이었으며, 실제로 일반인들의 노래 커버 등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발견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는 것.
모 관계자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노래를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는 등 단순 바이럴이 시작됐다”며 “이 시기에는 TV를 제외하고는 홍보 수단이 많지가 않았다. 마침 페이스북 페이지가 떠오르며 콘텐츠의 노출 위치가 달라지게 됐다. TV에 비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풀이했다.
2단계 : 이 작전이 점차 먹히면서 전략적 페이지들이 생겨났고, 바이럴 업체의 확장과 함께 번들 패키지가 등장했다. 프로바이더가 몇 개 페이지에 단순 음원 업로드, 일반인 커버 영상 등을 올리며 본격 (바이럴)열풍이 불었고, 이와 함께 유튜브가 급부상하며, 커버 영상까지 바이럴 요소 중 하나로 포함됐다.
아직까지는, 사재기와 바이럴이 확실히 나뉠 시점이라고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모 관계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바이럴과 사재기는 엄연히 다른 시장이었다. 소속사 입장에서도 마케팅, 바이럴 비용도 따로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음원 조작이 많을 수가 없는 컨디션이었다”고 풀이했다.
3단계 : 이제부터가 모호해질 시점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일명 브로커로 불리는 (사재기)업자들이 본격 수면 위로 등장, 전략을 바꿨다는 것. 가요계 관계자는 “실제로 이런 일이 존재한다면, 사재기 수법 안에 페이스북 마케팅 등이 포함되는 건, 대중의 니즈가 있다는 증거 제출용일 확률도 있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 철저한 수사 필요
사재기 논란은 가수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공론화 된 것으로 보인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다”는 딘딘에 이어, 성시경과 김간지도 말을 보탰다. 성시경은 지난 27일 방송한 KBS 해피FM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에서 지인이 겪은 음원 사재기 관련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성시경은 “최근 사재기 이야기가 많은데 실제로 들은 얘기가 있다”며 “(대행업체에서) 작품에도 관여를 한다고 하더라. ‘전주를 없애고 제목을 이렇게 하라’는 식이라고 한다. 저희 작품 하는 형이 곡을 준 상황인데 ‘가사를 이렇게, 이런 식으로 안 되겠냐’는 이야기를 해서 거절했다고 하더라. 그런 게 실제로 있긴 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간지는 지난 26일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를 통해 “최근 가요계에 논란이 된 사재기 브로커가 직접 찾아와서 음원 순위 조작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며 “수익 분배를 브로커 8, 나 2로 하자더라. 그냥 (음원 사재기를) 하면 안 되니까 페이스북 ‘소름 돋는 라이브’ 같은 페이지에 신곡을 자연스럽게 노출을 시키고 바이럴 마케팅으로 순위가 폭등하는 것처럼 꾸미는 방식으로 제안을 받았다. 고민했지만 거절했다”라고 구체적으로 밝히며 파장을 더했다.
실제로 음원 사재기와 페이스북 마케팅 사이 협업 관계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조사 없이 판단내리기 섣부르다. 일반 마케팅까지 음원 사재기와 혼동되고 있는 이 상황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면에서 또 다른 우려를 사고 있는 것.
다만, 일명 ‘페북 픽'(페이스북 픽)을 받은 콘텐츠는 이용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음원 차트에서 성과를 보이게 됐고, 이 같은 연결고리만으로 음원 차트 변동이 유의미하게 일어나는 것이 가능할지에 가요계 대다수가 의문을 표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가요계에서는 사재기 의혹을 두고 이를 제기한 박경, 이름이 거론된 바이브, 송하예, 임재현, 전상근, 장덕철, 황인욱 간의 법적 공방이 뜨거운 감자다. 양 측은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직접 고소장을 접수하며 맞대응을 예고, ‘사재기 의혹’에 불을 붙였다.
김풀잎 기자 leaf@tvreport.co.kr / 사진=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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