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회사 근처 디저트 맛집? 실로 유니콘 같은 존재다. 카페공화국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카페가 많은 한국이지만 직장인들은 늘 새로운 메뉴, 더 강렬한 맛을 갈구한다. 어차피 식후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 거면서 무슨 맛집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앞으로 가야 하듯 근로의욕이 간당간당할 때는 당당하게 당충전 하러 가야 하는 법. 지역상권도 부흥하고 내 입맛도 부흥하기를 바라며 쓰는 회사 근처 디저트 리뷰.]
‘홍콩여행 추억이 새록새록’
2호선 충정로역 8번 출구. 얼마 전부터 출퇴근길에 사부작사부작 인테리어 공사하는 가게가 있었다. 거의 다 완성될 때쯤 보니 ‘홍콩다방’이라는 간판이었다. 차분한 초록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로고와 여기저기 적힌 한자. 작년에 갔던 홍콩을 그대로 생각나게 하는 인테리어였다.
문 앞에 붙여둔 메뉴판에는 밀크티와 까이딴자이라는 이색적인 음식 이름이 적혀 있다. 까이딴자이는 계란을 넣어 만든 홍콩식 에그와플로 포도송이처럼 동글동글 올록볼록한 모양이 특징이다. 홍콩 여행 갔을 때 까이딴자이는 못 먹어 봤지만 밀크티 맛집으로 소문난 란퐁유엔 밀크티는 맛보았기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홍콩 지하철 역 옮겨 놓은 듯’
들어가자마자 홍콩 지하철역을 떠오르게 하는 벽면 인테리어가 눈을 끈다. 상하좌우에 한자로 홍콩 지하철역 이름이 적혀 있고 가운데에는 큼지막하게 카페가 위치한 장소(충정로) 이름을 붙여놓았다. 홍콩이나 우리나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다. 홍콩으로 떠난 듯 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콘셉트에 충실한 인테리어다.
슬쩍 둘러보고 사진촬영 허락도 받은 다음 메뉴를 골라 본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일단 처음이니 대표메뉴인 음료 3종(스타킹 밀크티, 동윤영, 동링차)와 까이딴자이 2종(플레인, 치즈)을 주문했다. 충정로역점은 지금 오픈행사 중이라 음료 2잔을 주문하면 플레인 까이딴자이를 증정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앞에 사장님이 있지만 주문은 전부 무인주문시스템(키오스크)으로 이뤄진다. 메뉴를 고르고 음료에 얼음을 넣을지 말지 선택하면 된다. 선택해야 하는 옵션이 많은 건 아니지만 기계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다.
‘힐링되는 향과 맛, 폭신한 까이딴자이’
번호표를 받고 잠시 기다리니 사장님이 까이딴자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붕어빵이나 와플 만들듯 올록볼록 포도송이 같은 틀에 반죽을 쭉 짠다. 치즈 까이딴자이는 동그란 알 부분에 작은 치즈조각을 뿌린 다음 반죽을 부어 만든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붓고 이리저리 기울여 골고루 퍼뜨린 뒤 뚜껑을 닫자 고소하고 달달한 향기가 퍼져 나온다.
까이딴자이 4000원
치즈 까이딴자이4800원
※가격은 홍콩다방 충정로역점 기준입니다.
퇴근길에 빵집 앞에서 풍기는 따끈한 냄새, 주택가 가정집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밥 하는 냄새를 맡으면 하루 동안 쌓인 긴장이 탁 풀어지면서 저절로 후~ 하고 심호흡하게 된다. 까이딴자이 굽는 냄새도 딱 그렇다. 역시 음식 만드는 냄새만큼 인간적인 건 없지(부작용: 집에 가고 싶어질 수 있음).
잠깐 기다리니 까이딴자이가 완성됐다. 다 구워지면 틀에서 꺼내 작은 송풍기 앞에 대고 한 김 식힌다. 너무 뜨거우면 먹기 힘들고 너무 많이 식히면 맛이 떨어지니 적당히 따끈할 정도의 밸런스가 중요해 보인다. 평소에 음식을 뜨끈할 때 먹는 걸 선호한다면 미리 ‘살짝만 식혀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
먹기 좋게 식힌 까이딴자이는 네모진 고깔 모양 전용컵에 크레페 담듯 담아준다. 손에 묻히지 않고 들고 다니면서 먹기 좋은 비주얼이다.
처음 먹어본 까이딴자이는 ‘상상할 수 있는 그 맛, 하지만 계속 먹게 되는 맛’ 이었다. 이미 전에 홍콩다방 까이딴자이를 먹어 본 적 있는 에디터 BANGDI가 “쫄깃하고 담백한 타코야끼 맛”이라고 평한 적 있는데 한 입 먹어보니 바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담백하게 에그와플 반죽만 넣어 굽고 위에 고운 슈가파우더를 살짝 뿌린 플레인 까이딴자이는 은근하게 달달한 맛, 치즈 까이딴자이는 단짠단짠의 조화를 이루며 식사대용으로도 딱 좋을 것 같은 맛이었다. 둘 다 음료와 함께 마시면 계속 쭉쭉 들어갈 정도로 부담 없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캔에 담긴 시그니처 음료 3종’
일단 맥주캔을 연상시키는 알루미늄 캔에 담아준다는 것이 독특하다. 바로 마시지 않고 테이크아웃할 때 특히 편리해 보인다. 얼음 안 넣은 걸로 주문하면 몇 캔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 다음날 꺼내 마시기에도 좋을 듯 했다.
※가격은 홍콩다방 충정로역점 기준입니다.
밀크티 5000원
대표음료인 스타킹 밀크티는 홍콩 밀크티집에서 실크 스타킹으로 찻잎을 걸러내 우려주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달지 않고 부드럽다는 점에서 합격점이지만 진한 홍차를 좋아하는 입맛이라면 향과 맛이 조금 약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무난하고 시원한 맛.
동윤영 5500원
백종원이 2018년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에서 직접 홍콩 현지맛집 동윤영을 소개하면서 한국에도 점차 이름을 알린 음료다. 커피와 홍차를 섞었다고 해서 언뜻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웬걸, 커피맛이 난다 싶으면 홍차맛이 나고 홍차맛이 난다 싶으면 커피맛이 나면서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보여준다. 알아보니 막 섞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황금비율이 있다고. 얼음 빼고 진하게 마셔보고 싶은 메뉴다.
동링차 5500원
한 줄로 요약하면 레몬 아이스티다. 달달한 홍차에 레몬 조각을 넣어 상큼한 맛이 돋보인다. 덥고 갈증날 때 시원하게 들이키기 안성맞춤일 것 같은 맛. 전체적으로 맛이 진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부담없이 술술 마시기에 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성있고 운반하기 편한 캔 비주얼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분리수거다. 일반 플라스틱 컵은 얼음을 쏟아내고 컵만 따로 버릴 수 있지만 캔 타입은 뚜껑을 딸 수도 없고 음료가 나오는 구멍도 작아 얼음을 꺼내기 힘들다. 결국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따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밖에서 먹고 버릴 때 청소담당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특히 동링차는 레몬조각도 같이 들어가 있어서 더 번거롭다. 얼음은 녹으면 그만이지만 레몬 조각을 꺼내려면 아예 캔을 잘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캔 재질이 일반 알루미늄캔만큼 단단하지 않아 문구가위로도 쉽게 잘린다는 점. 가위로 캔을 잘라 내용물을 꺼내 버리고 분리수거하면 된다. 단, 절단면이 날카로우니 다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간식으로도, 식사 대용으로도 적당한 맛’
음료도 까이딴자이도 대중적인 취향에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진한 홍차맛을 좋아한다면 얼음 넣은 밀크티보다는 따뜻하게 마시는 편이 더 좋을 듯. 홍차 향 자체가 약하다기보다는 얼음과 섞여서 맛이 희석된 느낌을 받았다. 폭염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까이딴자이 한 입에 따끈한 밀크티 한 모금 하면 더욱 매력적일 것 같다.
에디터 LEE · 사진 BANG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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