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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호주 땅을 처음 밟은 82세 이금귀 할머니. 가족들을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살기로 결심했지만 이민 초기에는 한국이 그리워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몹쓸 병에 걸려 투병생활도 했지만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고, 그 뒤로 쭉 호스피스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할머니가 손수 가꾼 집에는 언제든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어 있다.]
호주교민 종합 일간지 한호일보와 호주생활정보 앱 아이탭이 최근 공개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소개합니다’의 일부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1월 10일에 걸쳐 호주에 사는 한국인, 혹은 한국과 인연이 있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모았다. 최종적으로 4팀을 선정하여 어르신들의 삶 이야기를 듣고, 화보도 촬영해 ‘인생사진’을 만들어 드리는 ‘희망과 기억’ 프로젝트다. 현지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자영업자, 기업들도 적극 후원했다.
프로젝트를 주관한 한호일보 관계자는 한국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미래에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기록한 어르신들의 ‘특별한 하루’는 어땠을까.
94세 민수동 할아버지
민수동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단짝인 할머니는 결혼한 지 70년이 넘으셨다. 할아버지가 스물네 살 되던 해에 열여덟 살이던 할머니와 결혼했는데, 결혼하자마자 전쟁이 나서 난리통에 생이별을 하셔야 했다고. 가까스로 가족을 다시 만나 우여곡절 끝에 호주로 터전을 옮긴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김치를 담가 가족들에게 나눠주신다. 민수동 할아버지는 90대 중반 연세에도 매주 두 번 블루마운틴까지 기차를 타고 등산을 갈 정도로 정정하신데다 무엇이든 만들고 고치는 것이 특기라 직접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어 집안을 가꾸고 계신다.
89세 믹 콜호프 할아버지
어르신 4팀 중 유일한 호주 출신인 믹 콜호프(Mick Kohlhoff) 할아버지의 사연도 특별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콜호프 씨는 15개월 동안 한국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겨울이 너무도 추웠다고 회상했다. 콜호프 씨의 사연을 제보한 사람은 옆집에 사는 교민인 브라이언 서(Brian Seo)씨다. 젊은 시절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웃집 어르신의 사연을 널리 알리고, 할아버지께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 콜호프 씨는 최근 건강이 약해졌음에도 기꺼이 마당 구경을 시켜 주고, 한국에서 지내던 시절의 빛 바랜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 젊은이들을 반겼다고 한다.
78세 기원주 할머니
2006년, 호주로 유학을 가게 된 손녀의 보호자로서 함께 이국 땅을 밟은 기원주 할머니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손녀가 호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산후조리사 등 수많은 일을 하며 손녀 뒷바라지에 매진했다. 빠듯하게 살림하는 와중에도 큰아들네 형편을 염려해 생활비까지 보탰다는 기 할머니의 사연에서는 애틋한 어머니의 정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YWCA 합창단 지휘자를 했던 경험을 살려 노래교육 봉사, 성가대 지휘봉사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고 계신 할머니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바로 지금”이라고 답하셨다.
지난해 보그코리아에서 공개한 ‘할머니와 꽃’ 화보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한호일보/아이탭 측은 “어르신들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더 값진 행복을 얻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일하는 사진작가, 메이크업아티스트, 한복제작자, 플로리스트, 음식업체, 호주 정관장 등 교민사회가 똘똘 뭉쳐 어르신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아이탭 앱을 통해 완성된 화보를 접한 교민들 역시 “감동했다”, “한인사회에 이렇게 훈훈한 뉴스가 많았으면”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글 한호일보 · 29ST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
사진 한호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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