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힘든 목요일 아침 노래 한 곡으로 시작하시라”는 동료 JEONG情의 메신저. ‘매드몬스터? 새로 나온 아이돌인가’라는 생각에 초록창에 매드몬스터를 검색하자 기사가 쏟아졌다. <매드몬스터 행보 어디까지>, <월클돌 매드몬스터> <매드몬스터 직격인터뷰>.. 원래 아이돌 음악을 잘 듣지 않는 편이기에 ‘아, 나만 모르는 월드클래스 아이돌이 또 나왔나보다’하는 반성의 마음으로 유튜브 링크를 눌렀다. 그리고 그게 비극, 아니 희극의 시작이었다.
청량한 뮤직비디오의 색감과 그다지 나쁘지 않은 곡 도입부. 오토튠 일색에 가사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지만 첫인상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생각 없이 영상을 보다가 점점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가수의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얼굴 주변은 아지랑이가 인 것처럼 잔뜩 찌그러져 있다. 눈은 왕방울만하고 눈동자는 지나치게 초롱초롱하다. 마치 스노우 어린아이 필터를 씌운 셀카처럼.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건 최준 매운맛이구나.’
때마침 영상에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황급히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워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남긴 댓글에 위안을 받고, “노래가 왜 좋게 들리지” “킹받네(열받네)”라는 댓글에 공감하고, 기어이 영상을 끝까지 다 봤다. 분명 이상한데 묘하게 그럴싸해서 자꾸만 영상을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점점 노래가 좋게 들리고, 뮤비가 자꾸만 청량하게 느껴져서 저항을 포기했다. 매드몬스터의 다른 영상을 찾아 보기로 하고 만 것.매드몬스터의 영상이 올라오는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는 보통의 아이돌 소속와 채널과 다름 없이 수많은 매드몬스터 영상이 있다. 의상 컨셉 회의, 음원 발매 공식발표, 쇼케이스, 멤버 브이로그까지. “아이돌이 하는 건 지독하게 다 하는구나 정말”이라는 시청자의 댓글은 3000개 가까운 공감을 받았다. 모든 영상은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의 필터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 촬영됐다. 과도하고 부자연스러운 필터 적용으로 주변 공간 왜곡까지 일어나지만 귀엽고 잘생긴 아이돌 설정에 몰입해서 뻔뻔한 연기를 하는 게 시청자의 ‘오그라듦’과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댓글의 ‘드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개그맨들이 아이돌 부캐에 몰입해 연기하듯 시청자들도 아이돌 팬 역할에 몰입해 유쾌한 댓글들을 쏟아낸다.
에디터 역시 이 지독한 늪에 빠져들었다. 매드몬스터가 탄, 제이호로 이루어진 2인조 보이그룹이고, 소속사 매드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대디, ‘포켓 몬스터’라는 이름의 팬클럽과 45개국에 60억 명의 팬이 있다는 세계관 설정을 찾아 읽었다. 심지어는 “둘셋! 하이(Hi) 에이치아이~ 매드몬스터 탄이야! 제이호야!”라는 아이돌 그룹 특유의 인사말까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딘가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이나 유명 프로듀서 테디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에 실소가 나온다. ‘으.. 이게 뭐야’를 되뇌이면서 자꾸만 보게되는 영상, 시청자를 ‘준며들게’한 유튜브 피식대학 채널의 최준 이후로 이런 길티프레저는 처음이다.
*길티프레저(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매드몬스터’라는 미치도록 지독한 세계관’
매드몬스터의 멤버 탄과 제이호의 ‘본체’는 KBS공채개그맨 출신인 곽범과 이창호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 역시 이들이 함께 만들었다. 빵송국 채널에는 매드몬스터 영상 외에도 수많은 콘셉트의 코미디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떠난 개그맨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최근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많은 개그맨들이 유튜브로 진출하고 있다. 거기에 MBC ‘놀면뭐하니’의 유재석에서 시작된 ‘부캐’ 바람이 더해졌고, 유튜브 코미디 채널은 뻔뻔함을 콘셉트로 하는 부캐들의 천국이 됐다. 특히 인물의 특징을 과장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개그맨들은 유튜브 코미디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콘텐츠 소비 창구가 TV에서 유튜브로 이동한 것도 이런 채널들이 구독자를 확장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앞서 언급한 최준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다. ‘B대면 데이트’라는 소개팅 콘셉트 영상에서 느끼한 소개팅남 ‘카페사장 최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개그맨 김해준은 지금 제1의 전성기를 맞았다. 개그맨 김해준으로서는 출연하지 못했던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의 러브콜, 광고 모델 섭외가 이어졌다. 곽범, 이창호 역시 이 같은 성공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이다. 유튜브 채널 개설 전부터 친분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창호는 피식대학의 ‘B대면 데이트’에도 또다른 부캐 ‘재벌3세 이호창’으로 출연 중이다. 두 사람은 한 인터뷰에서 “피식대학 멤버는 우리에게 스승이자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드몬스터라는 성공적인 부캐를 기반으로 곽범, 이호창은 ‘빵송국’의 세계관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늘 영상을 처음 본 에디터의 반응이 “으”라는 침음에서 시작해 “ㅋ”라는 웃음으로 바뀐 것을 보면 먼 일은 아닐듯 하다. 웃음으로 무장한 신개념 아이돌을 응원하며 매드몬스터의 인사말로 글을 끝낸다.
‘바이~ 비-와이-이-(bye)’
에디터 HWA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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