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설이 기자]뜨겁지도, 애틋하지도, 아쉽지도 않다. 시청자는 매우 찝찝하게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헤어지게 됐다.
‘고품격 음악 방송’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6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KBS에서 손 꼽히는 장수 프로그램의 어이없는 퇴장이다.
KBS2 금요일 심야는 음악 팬들에게 특별하다. ‘노영심의 작은음악회’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유희열은 이 자리를 13년 동안 주류부터 비주류까지 다양한 음악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대중에게 좀 더 폭 넓은 음악 세계를 소개하고, 비주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응원하는 금요일 밤이었다.
2020년 이맘때 방송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는 금요일 밤 KBS를 사랑하는 시청자에게 축제였다.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이 출연해 음악과 의미로 꽉 채웠다. 금요일 심야라는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 이 시간대를 책임졌던 역대 진행자들이 모여 추억을 담아 시청자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또 2년여 시간이 흘러 600회를 앞둔 시점에서 제작진들은 이번엔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고심했을 것이다. 폐지라는 날벼락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MC 리스크로 말이다.
금요일 밤을 책임질 MC로서 유희열의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흘렀다. 원맨밴드 토이의 프로듀서로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과 후배 뮤지션의 존경을 받아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였고, 발라드계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 시절 그의 라디오와 토이의 음악으로 감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들에게는 인생 선배이자, 오빠 또는 형 같은 존재, 고된 하루를 버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러이기도 했던 그에게 음악 프로그램 MC는 적역이었다.
그런 유희열에게 제기된 표절 의혹은 뮤지션 본인에게 큰 오점임과 동시에 오랜 시간 그의 음악을 들어온 팬들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즐겨 듣던 그 노래가 이번 ‘표절 의혹’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면, 상처는 더욱 깊고 아플 것이다. 플레이리스트에 유희열의 곡을 계속 둬도 되나 고민하게 만들고, “토이 팬”이라고 말하는 걸 망설이게 만들었다.
유희열도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간을 부정 당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라고. 그런데 그 뒤에 덧붙인 말은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올라오는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마지막을 고하며 유희열의 음악으로 위로 받던 이들에게 진심을 전해야 할 입장문에서 “(표절 의혹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이 글의 진정성은 무너졌다.
아름다운 이별, 뜨거운 안녕은 물 건너갔다. 구차한 안녕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TV리포트 DB,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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