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고(故) 현미의 빈소를 찾는 가요계 동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현미의 빈소가 마련됐다. 현미의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대한가수협회장 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수 서수남과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이날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미국에 살다가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 현미의 첫째 아들 이영군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는 “어느 것보다도, 혼자서 가신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혼자서 말없이 가신 것에 대해서는 평생 씻어도 못 씻을 불효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고인을 추억하며 “문밖을 나서면 대한민국 가수 현미인데, 집에 들어오면 그냥 평범한 엄마였다”며 “지금도 ‘차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너무 평번한 엄마였다”고 회상했다.
조문 첫날 가수 설운도, 하춘화, 현숙, 정훈희, 임희숙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설운도는 “누님이 유난히 저를 많이 아껴주셨다”며 “집사람이 얼마 전에 옷을 해드렸는데 너무 예쁘다고 주변에 자랑하실 정도로 왕래가 잦았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이어 “누님만 보면 힘이 없다가도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 그만큼 귀감이 되는 존재였다”며 “가요계의 큰 누나셨고, 모든 선배, 후배, 동료들이 좋아하셨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설운도는 “항상 10대 소녀와 같은 마음으로 사셨다”며 “항상 에너지가 넘치셨는데 이 비보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랐다.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명복을 빌었다.
하춘화는 빈소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다 눈물을 쏟았다. 하춘화는 “제가 6살에 데뷔할 때부터 한 무대에 섰던 분이다. (현미는) 저를 ‘춘화야’ 불러 주시던 선배였다”며 “가요계를 든든하게 지켜주신 선배 한 분 한 분이 떠나시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이 자리를 누가 메꿔 주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누가 ”춘화야’라고 불러 줄까’ 싶다”며 “얼마 전에 송해도 돌아가시고, 가요계, 연예계에 큰 역할을 하던 분들이 가시니 마음이 허전하다”고 황망함을 표현했다.
현미는 지난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에 오르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냇 킹 콜의 곡에 자신이 작사한 가사를 입힌 ‘밤안개’로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현미는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 ‘무작정 좋았어요’, ‘왜 사느냐고 묻거든’ 등 다수의 히트곡을 잇따라 탄생시키며 ‘전설의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소재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는 8일 현미의 입관식이 진행되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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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행복했읍니다 그얼굴에표정하나하나영원히잊지못할겁니다 좋은곳에서편한하게 쉬세요 고인에명복을빕니다
삼가